
오가와 사야카 지음 / 갈라파고스 출판 / 문화인류학 에세이
11월, 오랜만의 홍콩 여행을 앞두고 읽음. 평소라면 여행가이드를 챙겼겠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책을 손에 들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제목부터 묘한 끌림이 있었다. 도서관 세계여행 코너에서 마주친 이 책은 홍콩이라는 도시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다큐멘터리이자, 문화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쓴 인류학 에세이다.
청킹맨션, ‘도시 속의 세계‘를 마주하다
이 책의 무대는 홍콩 침사추이의 청킹맨션이다. 나에겐 영화 <중경삼림>의 배경으로 익숙한 장소.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이주민들의 삶이 뒤엉켜 있는 ‘도시 속 작은 세계’다. 특히 이 책은 탄자니아 출신 상인들이 어떻게 이곳에서 사업을 꾸리고, 어떻게 서로의 언어, 종교,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청킹맨션엔 환전소, 중고 전자제품 가게, 파키스탄 식당, 아프리카 미용실까지 없는 게 없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니, 단순히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삶의 층위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예전 혼자 홍콩에 갔을 땐 미처 들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가보고 싶어졌다.
‘보스’가 되기까지 – 카라마와 마칭가들
책의 중심에는 중고차 브로커 ‘카라마’가 있다. 그는 자칭 ‘청킹맨션의 보스’다. 일본인 저자 오가와 사야카는 그를 중심으로 한 탄자니아 상인들의 생존 기술, 협력 방식, 종교적 신념, 애도 문화까지 깊이 있게 관찰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74페이지에 나온다.
“탄자니아-홍콩 조합.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 생겼을 때 서로 돕는다는 것.”
이 말은 그저 낭만적인 공동체 찬양이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맞은 동포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해 함께 돈을 모으는 이야기 속에서 나온다. 상업적 이득만이 아닌, 공동체 의식과 애도가 살아 있는 삶. 이 낯선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게 된다.
여행 전에 읽기 딱 좋은, ‘사람’에 관한 책
여행을 준비하면서 흔히 찾는 건 맛집, 핫플, 쇼핑 리스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여행 정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홍콩을 보여준다. 금융과 물류의 허브라는 겉모습 이면에, 세계 곳곳에서 건너온 이방인들이 만든 작고 복잡한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안엔 우리가 뉴스나 블로그로 접하지 못한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2층 파키스탄 식당, 이스트 침사추이 역 옥상 정원, 구석진 게스트하우스들. 그런 공간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떠오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청킹맨션은 단순한 명소가 아닌, 누군가의 삶터이자 생존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여행은 장소가 아닌 사람을 만나는 일
오가와 사야카는 문화인류학자다. 그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칭가들에게 장사를 배우고, 스와힐리어를 익히고, 실제로 장터에 함께 나섰다. 그 ‘참여’의 깊이 덕분에 이 책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학문적 용어로만 가득한 책도 아니다. 말랑하고 인간적인 문장 속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홍콩에 대해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사람, 청킹맨션을 겉핥기식으로 넘기고 싶지 않은 사람, 그리고 ‘사람’ 중심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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