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로봇이 알려준 감정의 언어 - 천선란 <천 개의 파랑>

by 얌전한 뭉치 2025. 8. 17.
반응형

 
그동안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몇 장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은 적이 많았던 SF소설.
<미키 7>을 읽고 나서는, 쉽게 쓰인 SF소설은 충분히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SF소설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도서 <천 개의 파랑> = 출판사 허블, 구글북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천선란 작가의 <천개의 파랑>. 국내에선 이미 2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미국 펭귄 랜덤하우스를 포함한 10여 개국에 판권이 수출된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작품인데요. 최근 세계 3대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 픽쳐스와 영화화 판권 계약을 체결하며 스크린 진출도 앞두고 있습니다.
읽어보니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겠다 생각했었는데 영화화 소식을 알게 되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한국 SF소설의 참 매력을 알게 된 작품 <천 개의 파랑> 그럼 줄거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1. <천 개의 파랑> 줄거리

인간을 대신해 말을 타고 경주하는 로봇 '콜리'. 콜리는 사고로 인해 본체가 망가진 후 폐기 직전 상태에서 한 여성의 손에 구조됩니다. 콜리는 구조된 집에서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지내며 인간의 감정, 기억, 속도, 상처, 관계 등을 배우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이들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콜리는 점차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성장해 갑니다. 표면적으로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SF적 설정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치유와 공감, 그리고 연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행복’과 ‘속도’라는 키워드가 소설 전반에 걸쳐 아름답게 녹아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2. 좋았던 구절

이 소설에는 마음에 오래 남는 구절들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좋았던 부분을 몇 개 소개할게요.

로봇이 뜨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 Chat GPT
해가 완전히 떠올라 밝아진 세상이 보였다.
"찬란하다"
콜리는 세상의 채도가 저렇게 높다는 것에 놀랐고
자신이 이 단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
콜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창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단어를 무작위로 뱉었다.
화려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노랗다. 붉다. 파랗다. 빠르다. 무섭다. ...
콜리는 끝도 없이 읊었다.
천 개. 콜리가 떠올린 단어는 천 개 였다.

 
책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 장면이었어요. 천 개의 감각, 감정, 기억을 담을 수 있는 '파랑'이라는 단어. 로봇 '콜리'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여정의 출발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장면을 읽자마자 마음이 따뜻하게 몽글몽글해졌습니다.
 
 

그리움이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로봇 '콜리'가 그리움이 뭔지 설명해달라고 묻자, 엄마 보경이 한 대답입니다. ‘슬픔을 덮는 건 억지로 잊는 게 아니라 현재에서 행복을 쌓는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졌어요.
보경의 대답처럼 그리움을 이겨내는 건 결국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때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 장면을 읽는 순간 오혁이 부른 프라이머리의 <Island>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노을지는 푸른 바다 = Gemini
가끔 저 옆에
바달 가고 싶을 때
바다 사진을 봐
거기 내가 있잖아

 
이 가사처럼, 외롭거나 힘든 순간에 꺼내볼 수 있는 행복한 기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내가 만든 오늘의 행복이, 언젠가 과거를 떠올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으니까요.
 

이해받기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적어도 지수를 만나기 전까지...

주인공 연재는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를 타야하는 언니에게 자신의 시간과 엄마의 관심을 양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삶은 결국 연재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믿음을 남기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기대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써 무덤덤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친구 지수를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 그 자체가 연재에게 새로운 감정을 열어주어요. 연재의 변화는,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감춰둔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3. 이런 사람에게 추천 - SF소설 입문작

<천개의 파랑>은 분명히 SF소설이지만, 마음속에는 따뜻한 감정의 결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어요.
로봇이 등장한다고 해서 전투나 과학기술 중심의 하드한 SF를 떠올렸다면, 이 책은 정말 다른 방향에서 감동을 줍니다. 또한, 휠체어를 타는 은혜의 스토리도 인상 깊었는데요. 그녀의 시선으로 통해 드러나는 현실의 냉담함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문장, 그리고 각 인물의 고유한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치유의 문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어요.
무엇보다, SF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꼈던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반응형